'일상르포'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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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르포14

반가운 식당 찾기가 어렵습니다 반가운 식당 찾기가 어렵습니다 글 정덕재(시인, 르포작가) 일주일에 이틀가량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다. 오전 11시만 되면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이런 짧은 고민도 번거로울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구내식당에 가는 것이 편하기는 하지만 사람의 입맛이라는 게 변덕스러워 맛있는 식당을 찾아 나서는 날이 종종 있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의 만족감은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골 농막에 가는 주말에는 점심을 읍내에서 자주 먹는다. 농막에 점심시간 무렵에 가는 이유도 있지만 좁은 농막에서 밥을 차려 먹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최소한의 살림만 있기 때문에 삼첩반상을 차리기도 쉽지 않다. 참으로 밥 먹기 어려운 식당 찾기 지난 7월 하순 비 내.. 2021. 8. 13.
올해도 쓰기는 계속된다 올해도 쓰기는 계속된다 글 정덕재(시인,르포작가) ‘글을 왜 쓰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때 자주 언급되는 작가가 있다. 소설 동물농장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조지오웰은 에세이를 통해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첫째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둘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열정, 셋째 역사에 무엇인가를 남기려는 충동,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을 글 쓰는 이유로 꼽았다. 작가를 포함해 글을 쓰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조지오웰이 꼽은 범주 안에 대부분 들어갈 것으로 짐작한다. 지난해 나는 개인 시집 한 권과 여러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참여한 몇 권의 책을 펴냈다. 문학적 성격의 글이든 취재를 바탕으로 한 르포형식의 글이든 글은 쓸수록 문장의 근육이 붙는 경우가 많다. 쓰.. 2021. 8. 5.
길을 지나는 마음 길을 지나는 마음 노은역 지하상가 글 사진 황훈주 노은역에도 지하상가가 있다.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길, 노은역에 내려 노은역 동편광장까지 이어진 지하상가를 걸었다. 통로 양옆으로 7-8 가게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오직 단 한 곳 ‘참치하루’만 불을 켜고 장사 중이다. 현재 시각은 6시 20분. 노은역에 내린 승객들은 빠르게 지하상가를 빠져나간다. 무심하게 지나는 인파 속에서 걸음을 멈추고 문 닫은 가게 안을 살펴본다. 테이블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테이블 위 수저통까지 그대로 놓여 있다. 가게 곳곳에 ‘현 위치 임대’라는 글씨가 붙었다. 마치 급하게 자리를 피한 듯한 가게 모습은 쓸쓸하다. 지하상가 끝에는 한때 마트에서 사용했을 냉장고가 방치되어 있다. 분명 존재하는 공간이지.. 2021. 7. 26.
어디유, 여기유 어디유, 여기유 글 정덕재 내가 종종 머무는 농막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남짓 나가면 면사무소가 있다. 대개의 면소재지가 그렇듯 관청 근처는 번화가다. 규모가 있는 군청 정도라면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겠지만 면사무소 주변은 그렇지 않다. 새마을 운동 때 개량한 이후 한 번도 손을 보지 않은 것 같은 가게 지붕은 이곳이 늙어 가는 작은 시골마을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약국 두 개, 슈퍼마켓 두 개와 구멍가게 한 개, 농약을 파는 철물점 두 개, 꽈배기와 찐빵을 파는 분식집, 그리고 고만고만한 식당 몇 개가 네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면사무소 근처를 가는 주된 이유는 짜장면이나 속풀이 짬뽕을 먹기 위해서다. 그곳에는 간판을 단 중국음식점이 세 개가 있다. 한 군데는 문을 닫는 경우가 빈번해 정상적.. 2021. 7. 21.
우리 동네 엣지 있는 도장 가게 아저씨 동일당인장포 한진희 씨 글・사진 이용원 우리 동네 엣지 있는 도장 가게 아저씨 한진희 씨가 들어가 앉은 그 좁은 공간을 바라보며 전투기 조종석이 떠올랐다. 빨간색 중절모와 감각적인 분홍색 와이셔츠에 넥타이, 체크무늬 신사복 바지에 낡은 구두를 꺽어 산른 한진희 씨 모습은 빨간 머플러를 두르고 전투기 조종석에 오르는 조종사와 흡사했다. * 이 원고 마무리는 남인수 노래와 함께 했음 1. 한진희 씨는 KT&G에서 생산하는 담배 중 제법 긴 축에 속하는 ‘한라산’을 입에 물었다.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이지 않고 대부분은 그냥 물고 있었다. 제때 빨지 않은 담배는 불이 꺼지기 십상이었다. 그때마다 라이터를 찾아 타다 만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필터 가까이 담배가 타들어가면 금방 새로운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또 불.. 2021. 7. 7.
짐을 실었을 때 행복한, 삶의 운전사 1톤 트럭 운전하는 안연만 씨 글 사진 성수진 짐차는 짐을 실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안연만 씨는 종종 이 한 문장을 읊조린다. 지난 10년 그는 1톤 트럭을 몰며 필요한 곳에 짐을 실어다 줬다. 60대 중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일,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자신이 먼저 무거운 짐을 들었고, 쉬라는 말에도 괜찮다 응수하며 더 많이 움직였다. 70대 중반의 지금,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를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은 “너 참 대단하다”, “네가 존경스럽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잘나가던’ 그가 풍파의 시간에도 꺾이지 않고 새로운 삶을 일구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삶이란,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안연만 씨는 날 생(生) 자가 소(牛)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형상임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 2021. 7. 5.
위대하고 소소한 연필 ‘심’을 향한 기도 위대하고 소소한 연필 ‘심’을 향한 기도 글 이파 6주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서점 삼요소에서 여덟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름하여 ‘창작과 비명’이라는 삼요소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이다. 내가 참여한 창비는 14기째였다. 이번에는 매주 하나씩 글감을 정해 놓고 글을 써서 올리고, 만나서 각자 써 온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첫 주에는 자기소개 글쓰기, 2주에는 한 문장을 정해 연상해서 글쓰기, 3주에는 사진을 보고 글쓰기, 4주에는 ‘가위’라는 제시어에 맞춰 산문쓰기, 5주에는 ‘침묵’이라는 제시어에 시쓰기, 6주에는 〈하나 그리고 둘〉 영화 속 인물 1인칭 글쓰기였다. 하나의 글감에 여럿이 동시에 글을 쓰다 보니, 결과물은 다양했다. 모두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걸 실감할.. 2021. 7. 1.
밭을 매는 사람들 밭을 매는 사람들 글 정덕재(시인, 르포작가) 지난해 내가 시골에 마련한 작은 농막의 주변에는 모두 다섯 가구가 산다. 세 집은 평소에도 살림을 하고 나머지 두 집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가량 집 상태만 살피는 형태다. 농막을 중심으로 산 아래 윗집은 양봉을 하고 50m가량 거리가 있는 아랫집은 수박 농사를 짓는다. 둘 다 타지에서 들어와 정착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농막 뒤편에는 작은 텃밭들이 있는데 이 밭은 아랫마을 사람들이 가꾸고 있다. 평상시 농막 앞에서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들은 앞길을 다니는 예닐곱 명 남짓이다. 그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이는 팔십 중반의 유모차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거의 매일 밭을 오르내린다. 유모차에 호미나 괭이를 싣고 오는데, 가꾸는 것은 깨나 콩 같.. 2021. 6. 24.
프로 늦잠러에게 아침은 지옥 프로 늦잠러에게 아침은 지옥 글 이주연 사람의 생활 패턴마다 '아침형 인간', '올빼미형 인간'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잠만보형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징글맞게 잠이 많아 하루 온종일 잠에 빠져 있는 날도 허다하다. 한 번은 꼬꼬마 시절, 눈이 소복이 내린 아침 가족과 함께 뒷산에서 눈썰매를 탄 적이 있다. 어릴 떄였으니 체력도 어마무시해 추운 줄도 모르고 신나게 썰매를 탔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따뜻한 안방에서 몸을 녹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다 엄마가 날 미친 듯이 흔들어 깨워 깜짝 놀라 일어나 왜 깨우냐며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에게 들어보니 저녁 먹을 때까지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자고 있으니, 큰일이 난 줄 알고 화들짝 놀라 나를 흔들어 깨웠단다. 한 .. 2021. 5. 28.
너도 한때는 따뜻했구나 너도 한때는 따뜻했구나 글 정덕재(시인, 르포작가) “아빠, 짜장면 먹을까?” 아흐레 만에 집에 들어온 나한테 아들이 던진 첫마디였다. 희미하게 웃어 주었다. 녀석도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일주일의 금식과 이틀간의 미음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에게 내뱉는 첫마디 치고는 경쾌한 농담이었다. 지난해 12월 13일 새벽, 화장실 변기에는 중국집 춘장 색깔을 띤 흑변이 가득했다. 잠이 덜깼나 싶어 유심히 살펴봤다. 역시 짙은 어둠이었다. 속 쓰린 배를 쓰다듬으며 소파에 누웠다. 식은땀이 흘렀다. 잠시 후 다시 화장실로 직행, 역시 변기는 먹다 남은 짜장면 그릇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것은 아침 7시, 혈압을 재고 심전도 검사를 하고 피를 뽑고 링거를 맞았다. 매번 다른 간호사와 의.. 2021. 5. 11.
혹시, 이런 된장 혹시, 이런 된장 정덕재의 일상르포 글 정덕재(시인, 르포작가) 된장녀와 된장남이라는 유행어가 나오면서 된장이라는 말이 다소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된장이 있는 밥상은 여전히 정겹다. 직장인들은 점심때마다 ‘오늘은 뭘 먹지’ 이런 고민을 반복해도 정작 메뉴는 그동안 먹었던 음식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색다르게 파스타를 먹자는 만년 과장의 제안에 직원들은 무리수를 두지 말라며 “된장찌개 드시죠”, “김치찌개 어떤가요?” 이런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혼밥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도 어머니가 끓여 주는 된장찌개는 다양하게 등장하는 신메뉴를 한방에 정리하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길든 음식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입맛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은 맛의 보수성 때문이다. .. 2021. 5. 11.
ㄱ 하니, 우리사랑했던 그 시절 ㄱ 하니, 우리사랑했던 그 시절 정리 고추 때는 바야흐로 2016년 5~6월 빨간 장미가 담벼락을 모두 물들일 때, 이들은 이별을 시작했다. 피자빵, 앙버터, 김밥, 홍차, 네 사람은 2016년 5~6월에 연인과 헤어졌다. 서로 짠 것도 아닌데 비슷한 기간에 줄줄이 이별을 겪었다. 2년, 8개월, 80일까지 만남을 지속한 기간은 모두 달랐다. 5월이 시작하자마자 전염병처럼 이별이 번졌다. 한동안 고요한 평화가 마음을 적실 즈음 연인과 헤어진 네 사람을 한 자리에 모았다.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피자빵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분노를 표현했다. 그래도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말로 뱉고 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끼고 크게 아프지 않다는 말! 모두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는 의미로 노란 단무지가 이별 모임을.. 2021. 4. 23.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글 정덕재(시인, 르포작가) “축하합니다” “더 기다려봐야지” 사무실 한쪽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밝은 표정을 짓는 한 사람이 문을 밀고 들어오자, 나와 얘기를 나누던 이는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는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고 일을 보고 나갔다. 인사를 받은 사람이 퇴장한 이후 같이 있던 이에게 물었다. “저 사람 승진했어요?” “아니요, 집값 많이 올랐다고 인사한 건데”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주변에서 아파트 시세를 화제 삼아 얘기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올해 들어 전국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 1~3위가 모두 대전이라는 얼마 전 보도가 떠올랐다. 이사한 지 불과 2년 만에 2억 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는.. 2021. 4. 19.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가 된다는 것 글·그림 이파 두 임산부가 만났다. 기차역 입구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임신 9개월, 임신 5개월에 접어든 두 임산부가 배를 내밀고서 손을 맞잡는다. "언니, 진짜 배 많이 나왔다!" 임신 9개월 된 배는 덮개를 덮은 유모차 같다. 그에 비하면 임신 5개월은 아무것도 아니다. 임신 5개월에 접어든 임산부는 그 배를 보며 현실을 깨닫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구나. 내 배도 저렇게 되겠구나. 어떻게 배가 저렇게 부풀어 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저런 일이 내 몸에서 일어난다고?!?! 두 임산부는 대학교 때 만나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 왔고 둘 다 마흔의 나이에 가까워졌으니 20년 가까이 서로를 알고 지낸 셈이다. 여태 여러 모습을 보아 왔으나, 그중 가장 충격적인 외양으로 마주할 줄은 몰랐다... 2021.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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